Wednesday, October 17, 2012

4/14, Day 5. 보미편



오늘 오전엔 우리가 지금 있는 농가 cretaiole의 주인이 하는 농장에 갔다왔다. 주인장 루치아노 할아버지께서 직접 투어를 시켜주시며 그 농장에서 만드는 와인, 페코리노 치즈, 햄을 아주 인심 좋게 시식시켜주셨다. (그가 따라준 와인의 양은 당황스러울 정도!) 할아버지께선 내내 젊은 동양인 여자 두명이 신기하시기만 한 눈빛이셨다. 게다가 우린 어찌나 잘 먹는지. 편육 같은 햄을 ‘부오노 부오노’하며 끊이없이 시식한 우리. ‘이런거 한국에도 있어요!’라고 열심히 설명했더니 루치아노 할아버지께서 매우 재미있어라 하셨다. 작은 농장이지만 너무나 열심히 그리고 깊은 자부심을 갖고 일하시는 할아버지 – 나중에 악수를 하는데 그의 손은 진정 농부의 손이었다 – 야구미트처럼 두툼하고, 거칠고, 흙이 살속에 베어있는, 너무나 정직한 손. (귀얇은 식탐 많은 나는 여기서 이것저것 엄청 사버렸다. 대체 어떻게 들고 가려고 -_-;) 루치아노 할아버지와 제대로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 (손짓발짓 말고!) 꼭 이태리어를 배우고 싶어진다.
시식덕분에 점심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고 거하게 취해서 2시간 넘게 낮잠을 자버린 우리. 덕분에 원래 계획했던 cortona를 갈 시간을 놓쳐버렸다. 그래도 전혀 아쉽지 않다. 결국 애초의 그곳을 가고싶게 만든 under the tuscan sun 영화는 cortona가 아닌 우리가 지금 있는 val d’orcia에서 찍었다니까 안 갔어도 목적을 이룬 샘?
오히려 시간이 그렇게 되어버려서 가게된 가까운 bagno vignoni에서 폭포아래 그림 같은 온천(?)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뭔가 산위에 돌성같은게 보여서 무작정 GPS의 말을 무시하고 간 castello에서 기가막힌 노을을 (추워서 끝까지는 못있었지만 거의) 보았다. 이렇게 하루하루 뭔가 발견하는게 즐겁다. 전날 보다 조금 더 아름다운 것을 볼 수 있다는게 마냥 감사하다. 비록 그게 가이드북에 나와있는 곳이 아니더라도, 순간에 충실하면서 보는 곳들은 다 좋을 수밖에 없다.
도시속에서는 봄이란, 이제 반팔 입을 수 있는 그런 계절로만 인식하고 사는데 여기 농장에 와보니 봄엔 새끼돼지, 새끼오리, 새끼고냥이, 새끼토끼가 나고, 노란색꽃이 온 언덕을 물드리고, 새싹이 돋아 초록색이다 못해 형광초록색이 되어버리는 그런 계절이었다. 그래 맞아, 봄은 귀엽고 사랑스러운 계절이었지.

Says William Wordsworth:
Nature can so inform
The mind that is within us, so impress
With quietness and beauty, and so feed
With lofty thoughts, that neither evil tongues,
Rash judgments, nor the sneer of selfish men,
Nor the greetings where no kindness is, nor all
The dreary intercourse of daily life,
Shall ever prevail against us, or disturb
Our cheerful faith that all that which we behold
Is full of blessings.

Day 4- Doer의 재발견





이탈리아식 이스터 런치를 먹고 “애들이 뛰어다니지 않는 조용한 곳”을 찾아 와인과 책, 엽서, 과일을 싸가지고 떠났다. 약 5시경. 어느 비포장도로를 따라가다가 언덕 위의 나무 한 그루가 좋아보여서 차를 길가에 세워두고 힉힉 대며 올라갔지. 그 위에는 정말 영화에 나올 것 같은 들판, 산이 초록으로 펼쳐져 있었다. 딱 질락 말락한 예쁜 하늘. 힘들여서 올라오길 잘 했어. 대한항공 담요를 깔고, 책도 준비 완료, 나는 이제 와인을 따라 마시고 낮잠을 자려는 순간- 와인 오프너가 없다… Creitole에 두고 와버렸어. Jerry가 맛있다고 추천해준 브루넬로를 눈 앞에 두고 꺼이꺼이 하늘을 보며 낮잠을 자려는 순간- 잘 수가 없어졌다. 나는 지금 너무 예쁜 하늘 아래, 음악을 듣고 공기도 좋은데 와인을 못 마시고 있어, 말도 안돼!
말리는 이보미를 뒤로 하고 언덕을 두다다 뛰어내려가서, 차에 시동을 걸고 무작정 길을 따라 보이는 집을 향해 달려갔다. (이미 지나가던 차 한대를 훠이훠이 손짓해서 잡았으나 미국인 아저씨는 와인 오프너가 없다고 했다.ㅠ) 입구가 막힌 첫번째 집을 지나치고, 공사 중인 두번째 집을 들리고 나니 주변에는 다른 집이 보이지 않았다. 언덕 위에서 무서워할 이보미를 생각하며 돌아가다가, 입구가 막힌 첫번째 집에 주차된 차를 발견하고 정원에 들어갔다. 문 너머로 들리는 말소리, 사람이 있어! 초인종을 누르자 이층 창문이 열렸다. “스쿠지- 와인 오프너?” 병을 가리키자 아저씨가 “시-시-“하고 내려온다. 이층 창문에 다른 두어명의 사람들이 나를 쳐다본다. 시골 한복판의 집 앞에 와인 한 병을 들고 있는 동양아이, 분명 구경거리다. 처음 보인 아저씨가 내려와 와인을 따주었다. 병 주위의 덮개도 다 떼어주었다.
상은: 부에나 피에스따?
아저씨: 응? 뭐?
상은: 음- 부오나 피스까? 파스까?
아저씨: 아아아- 부오나 피아스까! 그라치에!
상은: 응응, 부오나 피아스까!
아저씨: 자뽀네?
상은: 노- 꼬레아노!
아저씨: (&!*^*$&!(* 솔로?
상은: 노-노- (밖을 가리키며) 아미고, 아미고!
아저씨: (밥먹는 흉내 & 2층을 가리키며 밥 먹고 가라는 손짓)
상은: 농농 아미고 이즈 웨이팅 포 미
아저씨: 바 베네-
상은: 그라치에! 챠오~
아저씨: 챠오~
이 사이에 제 2의 아저씨 나타나 말을 걸었으나 중요하지 않으므로 생략 ㅋ

차를 몰고 달려와 이보미를 향해 언덕 위를 더더더- 뛰어갔다. 아직 해가 지지 않았어! 그리고 우리는 막 딴 브루넬로가 있다! 브루넬로는 딱 맛있었고, 나는 흐뭇해졌다. 그리고는 잊고 있었던, 내 안의 “Doer” 기질을 발견했다. 나는 늘 그렇다. 안 하면 내 인생이 완벽하지 않다고 느끼는, 그래서 바로 이때 꼭 해야만 한다고 믿는 순간, 억척스럽게도 하겠다고 뛰쳐나간다. 다른 사람들이 “바보 같다”고 놀려도. 이번 여행도 그렇지만.
근데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나의 그 뿌듯한 마음을. 지는 해를 보며, 이 순간을 더욱 완벽하게 만든 스스로를 칭찬해줬다. 뭐- 돌아가면 어때. 나는 어쨌건 그 최고의 순간을 즐기는 사람이 될게 뻔하다.
이보미, 나중에 내가 으어어- 이런건 지금 꼭 안 해도 돼. 나 그냥 quitter가 될거야,라고 할 때, 나한테 말해줘야해. “너가 뛰어내려갔던 그 언덕의 순간을 생각해봐”라고. 내가 삶에서 두렵다고, 귀찮다고 내 삶의 순간들을 완벽하게 만들지 않으려고 할 때, 꼭 얘기해줘. 그 때 그 영화의 할아버지처럼, “I’m not a f**king quitter!!” 라고 스스로에게 말한, 바람부는 언덕의 저녁.

다른 재밌는 얘기들은 보미가 쓰겠지? 이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