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피렌체에 도착해서, 라볶이를 먹고 빈둥대다가 강가에 햇볕을 쬐이러 갔다. 다리 한 가운데 앉아서 건너편에 보이는 베키오 다리를 바라본다. 관광객들의 걸음은 한결같이 빠르지만 정장을 입고 좋은 구두를 신은 피렌체 사람들은 하나같이 어깨를 펴고 천천히 걷는다. 관광객들은 피렌체에서 사진을 찍고, 관광명소를 볼 수 있지만, 피렌체, 그보다 크게는 토스카나의 여유로움은 옮겨담지 못 한다. 우리는 8일동안 얼마나 여유로워졌을까? 보미에게 나가자고 강아지처럼 촐랑촐랑 보채는 나나, 여기까지 왔으니 시에나를 보자고 차를 돌리는 보미나, "뭔가를 해야"한다는 사실에 아직도 얽매이고 있던 것 같다.
참, 3년 새에 피렌체는 많이 변했다. 상점은 더 많아지고, 내가 머물던 호스텔 앞에 있던 미우미우는 시내 중심가로 옮겼다. 이보미는 내가 기억을 제대로 못 하는 거다!라고 했지만 집지기님이 미우미우가 옮긴게 맞다고 확인해주셨다. 내가 기억하는게 맞구나. ㅠ 3년전에 집착했던 서점은 그대로. 내가 지금 보고 기억하는 것이, 다음에 또 오면 그 자리에 없을 수도 있겠구나.
여행은 그래서 은근히 슬프다. 돌이키고 싶어도, 그 때, 그 장소에, 함께 있던 사람들과 다시 모이는 때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 장소에 아무리 돌아왔어도, 그 때의 강가에 있던 호스텔 주인 아저씨의 사근사근한 미소도, 꽃을 머리에 꽂고 나타났던 독일인 여자애도, 나랑 놀아주던 브라질 여자애 패티도 없다. 그리움을 잔뜩 남기는 여행. 다음에 피렌체에 왔을 때는, 이보미도 없겠지. ㅠ
어제 집에 돌아와 피렌체 민박집의 동갑 "집지기"님과 함께 와인을 마시느라 새벽 1시 반에 잤다. 한국을 떠난 사람들은 한결같이 "한국 먹을 거 이야기"에 광분하며 이야기 꽃을 피우누나. 나는 곧 돌아가는데, 훗, 대신 가서 먹어드려야지.
집지기님과 친해진 덕에 우리는 느긋하게 일어나 게으름을 한껏 부리고 있다. 오늘 3시 반 기차를 타고 로마로 돌아가, 보미는 새벽 2시 30분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간다. 나는 밤 9시. 하루를 뭘 하고 있어야 뿌듯할까- ...난 로마에, 떼르미니역에, 혼자 있기 싫다..... 어딘가에 사람 북적이는 장소에 있어야겠다.
Saturday, April 18,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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